기나긴 설날연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다독은 늘 멀고도 험하니 그저 다시청 따위다. 나는 무려 장대한 신년구상이라도 해볼 참이었는지 “명장”이 보고싶어졌으나, C의 친절한 권유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게되었고, “재킷”은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혼자 보았다. 결론적으로, C의 판단이 옳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 - 이하 “… 비밀” - 은 설 연휴에 잘 어울리는 영화였고, “재킷”도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 영화 모두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사랑을 완성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할 수 있다”고 말해야하는 것은 “재킷”의 얼터너티브 엔딩 때문이다. 시간여행 영화는 이제 너무도 많다. “동감”, “프리퀀시”, “나비효과”, “12 몽키즈” 등에다 저 기념비적인 “백투더퓨처” 시리즈까지. 그 영화들과 어디가 같고 다른지, 누가 더 잘했는지 못했는지, 혹은 과학적인지(?) 여기서 나까지 논문을 쓸 일은 아니다. 다만, “… 비밀”, “재킷” 두 영화 모두 이 장르의 매력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본다.

“과거를 바꾸면 그때부터의 과거는 새로운 또 하나의 미래로 진행하는가?” 와 같은 어려운 테마는 잠시 접어두고… 이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전제는 2007년의 1월 1일은 2017년의 1월1일과 1997년의 1월1일과 동축선상에 놓여있다는 가정이다. 두 영화 모두 과거와 미래가 그처럼 동시적이면서도 인과를 맺고 있기에 주인공들은 “나비효과”의 주인공처럼 미래를 좋게 만들기에 바쁘다.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하는 “… 비밀”의 경우나, 마치 선지자처럼 예언을 이루려는 “재킷”의 주인공일 것이다. 여기서, 어려운 질문! 엄마 아빠의 데이트를 방해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되는가. 내가 둘의 인연을 망쳤다면 나는 처음부터 과거로 거슬러 오지도 못했을텐데, 나의 자유의지는 과거에 작용할 수 있는건가. 이 멋진 주제가 이미 “백투더퓨처”에 있었다. 그리하여 로이드 박사님께서는 남의 시간에 개입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우주도 망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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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만의 천재소년 주걸륜이 극복, 감독, 연기, 연주까지 다 해냈다고 하여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둘이 함께 피아노 치는 연탄곡의 시퀀스는 바이엘 하권에서 피아노 학원을 때려친 나 같은 이들로 하여금 유년시절을 아쉬워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음악에 대한 열정, 교복 입고 다니던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 거기다 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전영소녀” 모티프까지 더해진 이 치밀한 영화는 실로 시간여행 연애담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하게 갖추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빡빡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계륜미는 또래보다 어른스러우면서도 경쾌한 동갑내기 여고생 배역을 잘 소화해 이런저런 향수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까지 이렇게 칭찬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P2P 경로를 통해 개봉 전부터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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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참전군인의 총격으로 시작하는 “재킷”은 그저 시간여행 연애담으로만은 볼 수 없는 미묘한 영화다. 군데군데 숨어있는 요소들을 통해 이런저런 생각들 - 총격 이후 모든 것이 환상이다? - 을 해 볼 수 있겠는데, 나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 영화를 둘의 시간여행 로맨스로 보고자 한다. “재킷”에서야 애드리안 브로디를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따뜻한 인상이다. 아, 그놈의 따뜻함 때문에 이 영화의 모든 사건들이 비롯된다.

어쩌면, 두 영화의 문제는 사랑을 완성한 후가 아닐까. “… 비밀”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으로 살아야하고, “재킷”의 애드리안 브로디 역시 아무래도 마지막에는 죽었다고 봐야할 듯 싶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는데, 투명인간이 되어 사회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한 주걸륜이 과연 사랑만으로 무사히 인생을 지속했을까. “재킷”의 경우, 브로디가 안 죽었다고 고집 부려보더라도 이제는 덕분에 잘 나가게 된 나이틀리가 브로디와 사랑에 빠질까.

시간여행 연애담을 다룬 작품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한 번 짐짓 모르는 척 시간여행 연애담에 속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 지루하고 답답한 현실을 떨치고 다른 시간대의 같은 듯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만 있다면 “지금, 만나러 갈 수 있는” 사랑이 저 편에서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글쎄, 두 영화들을 보면서 다시 “백투더퓨처” - 3편까지는 너무 길었지만, 이 모든 고민들을 이미 신나게 보여주었던… - 를 생각한다. 마티는 제니퍼와 오늘도 연인이고, 미래에도 연인이더라. 허상 같은 환상을 좇지 말고 묵묵히 우주의 평화를 지키자? 이렇게나 마무리하게 되는 이유란 어제 먹은 그 잘난 떡국 때문일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어째 남들이 안 보는 드라마만 골라서 보게 되는 요즘이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관련기사나 입소문은 커녕, 소파에서 졸다가 챙겨보게 된 경우다. 그만큼 드라마의 흡입력이나 구성이 탄탄했고, 배우들도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훈/소유진, 주현/양금석 바탕에 신예 이채영/민석 등이 합류한 드라마, 유사 이래 가장 잘 팔리는 갈등 구조들인 출생의 비밀, 정략결혼 속 4각 관계, 상속다툼이 모두 얽혀있다. 거기다 미스터큐 - 수호천사 - 요조숙녀로 이어져온 ‘사내커플 직장생활 극복기’의 계보를 이어 이훈 이사와 소유진 비서도 제법 비즈니스를 펼친다. - 회사일이 과연 저리도 단순하고 쉬울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그렇게나 복잡할 건 뭐 있겠나.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방송 스케줄이 밀리기 일쑤였고, 주 1회 뿐 금요일의 늦은 시간 대,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배우들의 기용 탓에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찾아삼만리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도 - 히트작이 없어서 받는 오해일 수도? - 작가와 감독의 이야기 전개 및 연출 솜씨는 탁월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두시간 내내 하나의 표정만 짓는 통에 때로 한국 영화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여배우 J나 K 같은 이들에 비해 소유진의 연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솔직히는 신예 이채영 때문에 보게된 드라마지만, 소유진만 봤다. 기업을 일군 왕회장을 연기한 주현, 세컨드 출신의 사모님을 연기한 양금석의 연기도 보는 재미가 충분하다.

이 드라마의 모든 갈등은 돈과 적나라하게 얽혀있다. 배 다른 형제가 싸우는가? 아버지가 돈이 많아서. 자식은 왜 버리나? 부자집에 새 장가 가려고. 이훈은 왜 소유진과 바로 결합하지 못하는가? 이채영이 돈줄을 끊겠다고 해서. 돈을 둘러싼 갈등 구조들의 앞뒤가 모두 딱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 드라마는 아는 척 모르는 척 이놈의 돈세상을 솔직하고 천연덕스럽게 설명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어디 돈 빼놓고 무슨 이야기가 되던가 말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미혼모 소유진이 삼만리를 돌고돌아 재벌2세 이훈과 재혼하기까지의 멀고도 힘든 여정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작가가 얄미운 것은, 소유진에게 계속 돈을 좇지 말라고 강요하는 점이다. 마치 금도끼 은도끼 우화처럼 종영 마지막 5분 전까지도 돈을 마다한 소유진이 복 받는다. 없는 이들보고 욕망에 솔직하지도 말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아,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이들은 월급쟁이들이었다. 모두가 화합하는 엔딩의 웨딩 세레모니 씬에서 월급쟁이들만 어디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식장에 못 들어왔다. 그저 재벌가 상속 다툼 장기판의 말들이었거늘, 부장이 무슨 죄가 있나. 월급쟁이들이여, 명심할지어다. 자고로 줄을 잘 서야한다!

※ 1/25 종영했지만, 하나TV를 통해 21편 전편을 손쉽게 무료로 챙겨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에 대해서 나보다 더 열심히 리뷰를 쓰거나 쓸 사람이 한국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한 마디, “소유진 씨, 잘 봤습니다! 이훈 씨처럼 후속작 잘 잡으시길.”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윌 스미스의 모노드라마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윌 스미스의 팬, 또는 뉴욕을 동경하거나, 호러물에 대한 오마주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볼거리가 없지 않다. 1954년 출판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각색이 많았던 듯 싶다.

세기말을 버티는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상기시킬 정도로 훌륭한 인격자인 윌 스미스 대령이 뉴욕에서 홀로 살아남아 다음 세상의 전설적인 존재가 된다는 내용이다. 윌 스미스의 연기는 탁월하며, 역시나 그는 Cool하다. 영화는 그게 전부이다.

영화의 시작은 페라리를 쏜살같이 몰며 맨하탄에서 사슴 떼를 좇아 사냥을 하는 윌 스미스의 모습이다. 브룩클린 다리는 끊어졌고, 42번가는 초원이 되어가고 있다. 겨우 사슴 한 마리 잡았건만, 그나마도 배고픈 사자들에게 양보해야 할 지경의 뉴욕인 것이다. 항공모함 갑판을 골프 연습장 삼아 티샷을 날릴 정도면 이제 관광상품으로 손색이 없다. 대도시, 그 지긋지긋하던 인산인해들이 아무도 없다.

“상식적인” 인류가 멸망 위기에 처한 원인은 함암제인 신약의 광견병과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지구 입장에서는 흡혈귀들이 서식하든, 탐욕스러운 잡식동물이 서식하든 중요하지 않을텐데, 혼자 남은 입장에서는 쓸쓸한 마네킹들을 세워놓은 비디오 가게에라도 쓸데없이 마실 다니고 싶은 외로운 생존전쟁이다. 결국 역사는 혼자 남은 쪽의 손을 들어주어 그가 전설이 되는 모양이지만, 그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나는전설이다

내일이 오늘과 같다는 것부터 종교라는데, 만원버스에 김밥처럼 들어앉은 교통 정체의 출근길에도 밤이면 오손도손 서울을 밝혀줄 그들의 가정들을 생각하며 이 빡빡한 대도시의 이웃들과 함께 오늘 하루도 잘 살아봐야지. 보라구, 혼자만 사니까 저렇게 재미없잖아. 아, 그리고 제발, 지구 좀 아껴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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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국의 월남전 시대, 흑인 마약사범 댄젤 워싱턴과 그를 좇는 백인 형사 러셀 크로우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제목, “아메리칸 갱스터”에서도 뚜렷이 강조했듯 이태리에서 건너온 살바토레나 루치아노 아저씨들이 아닌 프랭크와 리치 같은, 미국의 미국스러운 조직폭력에 대한 찬가이다.

댄젤 워싱턴이 연기하는 프랭크 루카스는 흑인인 것부터 진보(Progress)라고 평가받는 입지전적 조폭이다. 뉴욕 할렘가를 주름잡았던 전 두목 밑에서 15년간 묵묵히 운전을 하며 자신의 기회를 기다릴만큼 절제의 인물이었으며, 낭비벽으로 튀려고 하지않으며 오직 가족들을 중시하는 모습들에서 예의 청교도들에 대한 상투적인 서술구들과 어울리는 인물이다. 거기에 마약의 중간 유통 구조를 생략하고, 브랜드 가치에도 일찌감치 빠삭했으니 그가 뉴욕을 장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기존 조직들로부터 미미한 견제밖에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설명이지 않을까?

러셀 크로우는 “뷰티풀 마인드”의 정신분열 수학자 시절처럼 엉뚱하지만 훌륭한 형사로 나온다. 왜 헐리웃은 아무리 봐도 꺼벙해보이는 그에게 괴짜 천재의 모습을 투영시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보다 뚱뚱한 체형으로 출현한 그는 그의 우람한 몸처럼 커버린 미 제국의 자화상이다. 이제 너무 늙어버린 브루스 윌리스나 외계인에 몰두하는 탐 크루즈에게는 그러한 감정이입이 아무래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낮에는 마약범들 좇고 밤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바람둥이 아저씨라니 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설정인가. - 뭐,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월남전 덕분에 프랭크의 눈부신 - 정경유착 아닌 군폭유착? - 마약 유통 구조가 나온다. 전쟁도 없애지 못하는 것이 마약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거대한 해악사업일 수록 사회 지배구조의 암묵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공익광고처럼 나오는 보통 시민들이 마약으로 인해 파멸하는 모습을 보라, 댄젤 워싱턴의 말쑥한 모습이야 말로 그러한 사업에 종사하면서, 혹은 행해지도록 눈감아 주면서 자기는 일요일에 교회 다니며 헌금 몇 푼하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어디 극단적인 저 마약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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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프랭크 측이 무난했던 그의 마약 성공기처럼 다시 일방적이고 차분한 패배를 맞으며 끝이 난다. 그 패배엔 다시 청교도적 교훈이 있다. 돈이 많이 드는 여자를 만나지 마라, 가족간에 꼭 화목해라. 후일담으로 프랭크와 리치가 공조하여 부패한 마약단속 경찰들을 일망타진한다는 이야기가 제시되는데 이는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노익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 솜씨는 탁월하며, 두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도 충분하다.

이 영화는 어딘가 닮은 두 남자가 적으로 만났던 “히트”와 조폭의 고전 “대부” 시리즈의 중간 즈음에 감독의 내공으로 인해 세련된 그림으로 서 있다. 영화 전반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프랭크와 리치의 후일담이 더욱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메리칸 조폭과 아메리칸 형사는 이러하다 식으로 제시되는 미국식의 강한 자기긍정에 대한 부담스러움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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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소리를 이 지구에 만들어내고 있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서로의 소리만으로 서로를 알 수 있다?

음악을 따라가면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이 판타지 영화의 무리한 구성이나 억지스러운 전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크게 의미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화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기만 하는,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음악”은 우리에게 음악 그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는 음악이란 기류의 파동이 어디서부터 기원하는지 잘 잡아내고 있다. 영화의 처음은 소년이 들판에서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 “봄날은 간다”의 그 아저씨가 떠오른다. 시골의 고아원에서 자라 숲의 소리들에만 익숙했던 소년은 온갖 소리의 공해인 도시를 마주치고선 무한한 소리들을 만나며 기쁨을 만끽한다. 그에겐 뉴욕 자체가 하나의 교향곡이다. 들었으면 다음은 표현이다. 모든 소리를 음악의 언어로서 받아들이는 그에겐 음악적 영감이 넘쳐난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로이 악기와 오선지에 담아 헤어진 부모를 음악으로서 찾는다. 이제 소리가 음악이 된다. 유년시절의 우리도 피아노학원의 주입식 레슨이 아니라, 피아노를 피아노로서 접할 수 있었다면 바이엘에서 좌절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august rush

서류 한 장 없이 줄리어드에 들어가는 아들에다 잘나가는 샐러리맨과 멋진 기타리스트의 변신이 순식간인 아빠와 십년만에 첼로를 잡아도 센트럴파크에서 공연하는 엄마, 천재 음악가족들의 별난 이산가족 상봉담이지만, 좋은 음악 덕분에 영화는 충분히 “들어줄” 만하다. 인간과 소리와의 관계, 그것이 음악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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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August Rush OST

덧. 영화 속 부모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미션 임파써블 3″에 나왔다는데 기억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