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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글에서 언제나 만원버스인 5711을 보며 그 배차간격을 답답해 해보기도 했었다. 위 사진은 어제 출근길, 뒷문에 대롱대롱 턱걸이로 매달린 채 서강대교를 건너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내 바로 뒤부터 발을 동동 구르는 열 명을 두고 버스의 뒷문은 닫혔다.
그럼에도 저 느긋한 안쪽의 사람들은 담소 따위 나누며 말 그대로 강건너 불 보듯이다. 얼핏 보아도 조금씩 좁혀 타면 대여섯 명은 더 탈 수 있어 보인다. 차의 가운데에서는 몇몇이 서로 몸을 밀고 당기고 “골 밑은 전장”인데, 누구도 안으로 한 발자국 씩만 들어가라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놓고 고민하는 내가 다행스러웠다. C에게 씩씩거리며 이 사진을 보여주니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라며 씁쓸해했다. 5711이 문제일까? 저 뒤에서 한 발자국도 출근길의 낯선 동행들을 위해 안 움직여주는 우리가 문제일까.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이런저런 이웃들의 흥미로운 모습들을 보게 된다. 좋게 보이는 풍경도, 눈에 거슬리는 풍경도 모두 우리 삶의 한 가지이다. 우리는 함께 서울을 살아간다.
#1, AM8 공덕역, 한 외국인이 출발하려는 기차를 모자까지 흔들어 문을 다시 열다?
- 자기가 타고 싶다거나 혹은 일행에서 낙오했다고 해서 본인을 위해 바쁜 출근길의 만원기차를 세우기란 아무래도 무리이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가 왜 떠나려는 기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달라는지 거들어볼까 고민하던 찰나,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이었고 결국 운전기사도 닫힌 문을 열었다. 아, 어느 여자가 입은 옷의 리본이 문에 끼었구나. 문제를 해결한 외국인은 환하게 한 번 웃고 다시 기다리는 줄 뒤로 돌아가 섰다. 여자는 민망한 마음만 바쁜지 고맙다는 말은 커녕 왜 문을 열었냐는 듯 외국인을 원망스레 지켜볼 뿐이었다.
#2. PM11 청구역, 어떤 아줌마가 만취한 아저씨와 함께 내리다?
- 지나친 음주로 힘들어하던 아저씨가 내릴 역을 지나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노선도를 노려보다가 졸다가를 몇 정거장 쯤 반복하고 있었다. 화장을 요란하게 한 옆 자리의 아줌마가 내릴 역을 알려주겠다며 아저씨에게 앉기를 권했다. 둘 사이에 수작이 몇 번 오고간 뒤, 아줌마는 흔쾌히 술 한 잔 더하자며 함께 지하철을 내렸다. 저렇게 만취한 아저씨가 모르는 아줌마와 술을 더 먹어보겠다는 발상도 궁금하고, 몸도 못 가누는 아저씨를 순순히 따라 나서는 아줌마의 의도도 궁금하다. 두 사람 중 한 쪽도 “다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들을 충족하길 빌었다. 둘의 나이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됨, 이상.
#3. AM11 동대문운동장역, 장남은 이미 어른스럽다?
- 토요일의 지하철, 상상력을 개발해준다는 천원짜리 팽이를 파는 아주머니가 다음 칸으로 이동하려다 각각 엄마와 아들 둘로 이루어진 두 쌍의 황금어장이 승차하는 것을 보고 다시 광고를 시작했다. 엄마 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 아이들은 이미 반짝거리는 팽이에 마음을 뻇겼다. 두 가족 중의 한 장남이 자신의 동생을 단속한다. 동생의 시선을 얼굴까지 손으로 잡아서 돌리며 “넌 왜 이렇게 갖고 싶은게 많냐” 핀잔을 준다. 형의 거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팽이 갖고싶다” 읊으며 형을 따뜻하게 포옹한다. 다른 엄마 - 장남으로선 엄마 친구 - 가 결국 하나씩 사주기로 결심한 모양. 아, 동생을 타이르던 엄한 형도 엄마의 눈치를 살짝 본다. 역시 형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첫째에게 이제 애들 아니니까 너와 저런 것은 안 어울린다고 이야기해주고, 친구가 둘째에게만 사주도록 허락한다. 형의 쓸쓸한 점잖은 눈빛을 지켜보던 나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다. 언젠가 든든한 남자가 되어 팽이를 마련할 그 친구를 위해. 그 장남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 추정, 이상.
어제부터 비가 왔다. 비에서 봄 냄새가 나는 것이 어느덧 3월, 겨울은 저 멀리 가버린 것만 같다. 사람살이, 먹은 나이만큼 속도가 붙는다더니 세월만 30Km 대로 가속하여 잘 흘러간다. 봄 내음을 아는 것, 여러해살이 생물이다 보니 가능한 일, 그렇기에 이 순환도 즐길 수 있는 것이겠지.
비가 오면, 출퇴근에 길도 막히고 우산 펴고 접느라 성가시기도 하지만, 요즘은 우산과 관련한 이 이야기 - 유산으로 740개의 우산을 선물한 공무원 - 가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에 젖는다. 사소한 우산 하나, 세상에 보내기에 얼마나 좋은 선물인가.
우리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것들이 우산 한 번 건네는 사소함보다 크기 쉽다는 생각은 어쩌면 우리의 많은 착각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위 사연도 좋고,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자고 약속했다는 프랑스의 어느 왕도 좋고,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라는 어느 문중의 가훈도 좋다. 나도 모든 사람들이 금요일마다 삼겹살을 구울 수 있게 했음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지내는데.
모두 다 TV에 나오는 1%처럼 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 조촐한 고기집에서 고기나 구우면서 즐거울 수 있던 소박한 사람들 - 염동일? - 에게까지 자본주의계는 욕망을 쉼없이 계속하여 재생산시킨다. 주상복합을 사고, 외제차를 사고 와인바에서 애인을 만나라 - 장준혁’s life? - . 애석하게도 재화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는 법, 욕심과 다툼과 시기만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환자를 위해서, 부강부국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위해서? 그런 훌륭한 분들이 어디 우산이라도 한 번 따뜻하게 나눠써봤던가. 다 자기 성을 짓는 데에만 바빴지.
그 우산에는 “건강하세요” 한 마디가 새겨있었다는데, 이 또한 우리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따뜻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온 봄에도, 올 한 해도 건강하시길! 봄 인사 끝.
그리하여, 나는 절친한 친구 아들의 돌잔치를 맞이하여 우산을 가지고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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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하나. 근데 구청 하나에 740명이나 근무하다니… 란 생각을 나만 했을까?
덧 둘. 삼겹살은 이제 너무 비싼 취미다.
주1. “염동일”, “장준혁” 관련하여는 MBC드라마, “하얀 거탑”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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