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제이슨 본, 주말까지 잔업에 시달리는 통에도 꿋꿋이 영화를 챙겨보았다. 영화는 3편까지 끌고 온 부담을 무난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려도 좋을 정도였다. 바쁘게 짧았던 1시간 50분의 러닝타임, 지난 편들처럼 쫓고 쫓기며 세계를 누비다 영화관을 나섰다.

“블러디선데이”의 폴 그린그래스는 이 시리즈로 인해 자신의 이런저런 실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키 타다 뒹굴며 넘어질 때의 기분이랄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피사체가 눈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긴박함이 탁월하다. C가 “슝슝슝”이라고 표현한 본의 격투 장면은 “해피피트”의 음악을 맡았던 파웰의 솜씨까지 더해져 모두의 숨을 멎게하는 그린그래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거기에 군중들 속에서나 차를 타나 날렵하고 시원한 화면들이 가득하다. 워털루역에서 신발 끈을 고쳐매라는 본의 말을 듣는데는 나도 같이 철퍼덕 주저앉아 숨고 싶었다.
본 시리즈의 특징은 계속되는 긴박한 활극 속에서도 흥분하지 않는 차분한 진행이다. 헬기를 향해 차를 던지지도 않고, 도로에 요트까지 늘어놓지 않는 차가운 현실성이 매력이다. 다큐멘터리에 능한 감독답게 “KBS 인간극장”의 CIA요원 에피소드의 구도로 보일 정도이다. 본은 어떤 첩보물의 요원들보다 더 강력하고 민첩하지만, 그는 그저 투박하고 과묵한 아저씨이다. 세상에서 제일 잘 싸우면서도 누구보다 싸우기 싫어하는 그는 인기가수도 직업일 뿐이라고 외치던 어떤 가수처럼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 치우듯 적들을 제압하며, 빨래 걷으러 나온 듯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는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시절부터도 이미 ‘그들’은 모든 걸 알고 있었는데, 구글도 미 정부에 협조한다는 9/11 이후의 지금은 어떠할까. 시리즈가 길어지다보니 - 꼬리가 길어지다보니 - 아쉬운 부분들이 없을 수는 없다. 모든 전화통화를 듣고 있으며, 타국의 CC-TV까지 조작할 수 있는 마당에 어찌하여 본이 뉴욕을 태연히 걸어다니게 둘 수가 있는가.[당신이 이 글을 읽고있다는 것도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는 뉴욕부터 모로코까지 줄기차게 세계를 누비는데 한편으로 본은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계속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다.
이번 편의 히로인은 우연찮게 얼마 전에 친구 S가 거론했던 줄리아 스타일스이다. S는 그러한 스타일에 매료된 적이 있다고 고백했지만, 그녀는 어쩐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 어울리는 배우인지도 모르겠다. 오션 시리즈에서는 늘 2%가 부족해 조롱받던 맷 데이먼이 이 시리즈에서는 고뇌하는 첩보원의 묵직한 내면 연기를 소화해내며 자신의 이름값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첨단장비라고는 오직 대포폰이 전부인 본처럼 그도, 이 영화도 세 편을 거치며 묵묵히 성장한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문제의 “블랙브라이어” 작전에 대한 공개 청문회가 열리고, 관련된 요원들이 연행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과연 미국의 공작이 줄어들까? 아마 화이트, 레드, 블루 브라이어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본과 같은 요원은 수천개의 공작 작전들의 일부일 뿐이며, 그 중에서도 장기판의 말 하나일 뿐인 것이다. 블랙브라이어는 어쩌면 실존하는 “블랙워터”에 대한 패러디인지도 모를 일이다.
따질 사람을 찾아 무려 세 편이나 세계를 헤맨 본은 결국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찾았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멀리 있지 않았다. 세 편 중 마지막이 가장 나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보기드문 3부작이라고 본다. 이후로 다시 본을 보기 어렵게 되었으니 첩보물 장르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쉬운 마음이다. 앞으로 데이빗 웹 대위는 뭘하고 살까 궁금해진다. 아, 아마도 줄리아 스타일스와…
(KJ ★★★★☆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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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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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31st, 2007 at 1:24 am
김주상
맷 데이먼이 나이 들어 보이는 건 내 생각만일까.
아저씨 근력도 좋으셔 - 지붕위를 뛰어 댕기시구^^
October 31st, 2007 at 2:15 pm
케이제이
지붕에서 창문으로 날아드는 장면이 대박. 원래 원작소설에선 더 늙은 설정이라는데… 암튼 맷도 열심이셔, 4편까지 찍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