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 니로 감독,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첩보물이라니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을 찾았다. 알렉 볼드윈, 조 페시, 윌리엄 허트 등의 조연들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비롯한 스탭들의 스펙도 빠짐없이 화려하나, 영화는 그리 명쾌한 편이 아니었다. 마치 숨겨진 ‘그 이야기’들이 대개 석연치 않은 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실화에 기반했다는 영화는 주인공의 기억을 따라 2차대전부터 62년 쿠바사태까지 흐르며, 예일대 비밀결사 등 미국 보수층의 당시 생활상을 사실되게 잘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정보업무나 정치공작의 실상이란 어쩌면 기약 없는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침묵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한 리얼리티에 충실하다보니 영화는 아무래도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고고학의 70%는 도서관에서 이루어진다”는 인디 박사의 말처럼, 천하무적 세계를 누비던 제이슨 본께서 이번에는 펜대 굴리는 공무원이 된 것이다.
영화는 정보요원들의 숙명을 반전까지 구사하며 잘 전달했는지 모르지만, 건물 벽을 타는 이단 헌트의 미션 임파써블에 익숙한 우리는 이제 그러한 깊은 맛을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인지 모르겠다. 조연들의 연기는 볼 만하나, 이미 CIA 요원이 익숙한 맷 데이먼을 쓴 것은 지루하고, 뇌쇄적인 미녀로 등장하는 짧은 젊은 시절을 제외하면 안젤리나 졸리 또한 평이하다. 두번째 연출이라는 드 니로 감독께서는 대하사극 감독에 만족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20세기의 첩보물들은 [영국인 007을 빼면] 대개 CIA를 둘러싼 이야기이기 쉽다. C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첩보물[≒CIA물]을 퍽 선호하는 편이다. “스파이게임”, “본 아이덴티티”, “리크루트” 세 편 정도를 꼽아왔는데, “굿 셰퍼드”도 한 자리 주어야 할 것 같다. 단, 잠복근무 치루는 듯 지루함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를 움직인 비밀들, 첩보작전들이 궁금하다고? 한미FTA 공문도 명백히 공개 않는 오늘을 보라. 누구를 위한 비밀일지 모를 공작정치는 21세기의 한반도에도 고스란히 남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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