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광흥창역에서 올라오는데 내게는 오직 서강대교 도하에만 이용되는 전형적인 만원버스 5177번을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5711번은 그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배차간격이 길고 그나마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여 선량한 시민들에게 출근길의 없던 짜증까지 불러일으키는 버스이다.
정거장에 도착할 때부터 이미 꽉 찬 버스에 추가로 20명 더 들어가는 승객명단에 포함되는 날엔 그날의 도하비용으로 지하철-버스 환승요금인 100원만 쓰면 되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면 한 달 동안 5711을 이용할 수 있는 비용이 한 방에 날아가니 이 또한 아이러니이다. 지각이 목을 조르는 듯 하여 택시를 탈까 고민하고 있는데 또 한 대의 텅텅 빈 5711이 유유히 정거장에 나타났다. 이런 무성의한 배차간격이라니! 평소와 다르게 우아하게 5711에 올라 무려 자리에까지 않은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젖었다.
5711이 앞차가 떠난 후 3분만에 연달아 나타났으니 이제 버스정거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다음 5711을 위해 더욱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다음 5711의 탑승가능확률 또한 낮아진다. 하지만 오늘의 나처럼 이 비정상적인 5711에 오른 “운 좋은” 우리는 무성의한 배차간격으로 인해 한 달 내내 시달린 짜증도 잠시나마 잊은 채, 마냥 편안하고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5711을 탈 수 있는 날은 25일 중 3번 정도이다. 우리 자식이 서울대에 가서 학벌 차별 구조를 만끽할 수 있을 확률이, 우리 자식은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확률이, 우리 집만큼은 집값이 폭등할 확률이, 이런 비정상적인 배차간격 속에서 쾌적한 5711을 만나는 정도의 확률보다 적지 않을까. 5711 버스를 운영하는 운수회사에 이 배차간격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회사 경영사정상 정말이지 곤란한 경우라면] 세련된(?) 서울시청에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바쁜지도 모르고 맨날 바쁘다는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짜증나는 5711을 겪는다.
“세상에… 집값이… 미·쳤·다”[상담자 대부분이 여의도에 근무하는 집없는 회사원들”에 밑줄, 그나마 직장이라도 있으니 은행에 가보기나 했겠지?]라는 한겨레의 헤드라인은 작금의 “아파트광 시대”를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내가 3억짜리 집을 사려면, 1억은 집을 사자마자 누군가에게 전세를 주어서 만들어야하고, 1억은 그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려야하고, 대충 1억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란 계산이 선다. 그리고 그렇게 집을 사고도 집에는 거주할 수 없으니 전세를 기웃거리며 이자부터 평생 갚아나가야 한다. 이러한 로직으로 1억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집이 몇 배로 매매되고 있고, 내 집이 있어도 전세를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전세가까지 상향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알다시피 문제의 근원은 재테크 수단으로서 집을 구매하는 세태와 은행에서 마구잡이로 대출하여 주는 작태다.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아파트 얘기다. 자신들이 버는 연봉의 서너 배 씩을 1년만에도 재미를 봤다는 이들이 솔깃한 소문을 내니 순진한 아저씨 아줌마들은 매일 억울해할 수 밖에. 더욱 무서운 것은 그렇게 소수에게만 창출되었다는 수익이란 것도 많은 경우 아직 현물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그러한 아무런 생산없는 수익으로 인해 기업에의 의지나 노동에의 의지만 말라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집 문제가 그러하고, 크게 보아 이 ‘선민되기놀이’는 학벌 차별, 비정규직 문제 등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여전히 5711이 선택받은 자신에게만은 비정상적으로 와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성의한 배차간격의 5711을 난수표 바라보듯 기다리다가 많은 직장인들은 서강대교를 건너지 못해 지각하거나 택시까지 타고 건너야한다. 왜 택시카풀들이나마도 안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프리허그 운동 같은 예수놀이가 아니라 사소한 택시 카풀이라도 해야한다. 그래야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덧. 나 역시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많은 뽐내기글들이 끝맺는 것과 같이 하자면…
고상한 척 이런 잡스러운 글 - 모두 아는 내용만 담긴 - 을 쓸 것이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 오늘 당장 저 아파트를 사야한다는거!? [네, 사실 이 글은 5711노선 택시풀 모임 창단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Local Tags: gap widening society, salaryman 한국사회
Technorati Tags: gap widening society, salaryman, 한국사회
[Related Posts] 153(구5711)의 문제가 아니다

wiredkj@gmail.com
15 comments
Comments feed for this article
March 17th, 2007 at 4:11 pm
Pingback from KJLAB · 5711의 문제가 아니다
November 15th, 2006 at 11:21 am
이전구
‘선민되기놀이’에서 ‘놀이’라는 형태소가 적잖이 눈에 거슬립니다. 마음이 팍팍한 탓이겠지요. 택시풀 모임은 실로 좋은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다만 택시운전기사가 보고 빈정 상할까 걱정이긴 합니다. ㅎ
아..그리고 문장 중에 하이퍼링크가 새창으로 열렸으면 좋겠네요.
November 15th, 2006 at 11:54 pm
케이제이
“patriot game”처럼 game이란 뉘앙스를 이상하게 우리말로 옮겨보려다 이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놀이”라고 하기엔 퍽 무거운 게임이 맞지. 아마도 그저 “시합”, “경주” 등이 적절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이퍼링크 새 창으로 열려야 한다 / 말아야한다 는 철학적인 체 하는 블로그학자들의 예송논쟁과도 같은 것인데 말아야한다 파가 득세하는 것 같아서 나도 “말아야한다”로 세팅해두고 있다만.
February 15th, 2007 at 1:48 pm
케이제이
5711 다들 좋아하나요?
요즘엔 가끔 어떤 기사는 뒷문까지 안 열어주는 데 답답하네요,
그리고 왜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들어가주지 않을까요? 앞에서는 그 난리를 쳐도 뒤에선 남의 일처럼 자리를 비워두고… 자기가 탈 때는 섭섭해할거면서.
(그러니까 광흥창에서 타지 말라구요?)
March 9th, 2007 at 8:23 pm
oteel
5711 정말..기본 자질문제..
운수를 찾다 이글을 보게 되었네요..전 5711에서 내리다가 문에 부딪히며 끼었어요..
내리려고 카드를 찍는데..앞에 승객들도 타고 있는데 확인도 안하고 얼른 뒷문을 닫는
심보는 뭘까요..얼른 내리라는 건가요..
5711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리다 그런 건 종종 봤는데,,보통 남자승객들은 욕하고 내리던데..
내리는데 문을 닫으시면 어떡해요라고 말하는 승객을 물끄러미 바라만보는 태도..
죄송하다는 말도 없는 아주 불친절한..기본이 되지 않은 기사분은..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게 부딪혀 팔근육이 아파서 병원을 가봐야 겠어요..카드도 딱 제때 안 찍힐 수도 있는데 급하게 문을 닫는 기사님들이 많아 다시 찍기도 어려울 때가 많아요..
운전은 안전을 기본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분 자질이 참 중요하겠죠..TT
승객은 내릴때 찍지 말고 미리미리 카드찍고 얼른 뛰어내려야겠어요ㅡ.ㅡ
March 10th, 2007 at 10:05 am
케이제이
안녕하세요, 이렇게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치신 곳은 괜찮으실지… 미리미리 카드찍기보다도 아예 찍지 말아버리는것도? (이상한 불매)
우선 꼭 버스 뒷문에 센서가 있어야 하나 의심스럽습니다.
버스 입장에서는(일부 기사들은) 뒷문으로 타면 무임승차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니 뒷문을 후다닥 닫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요. (자기만 편한 자리잡고 있으면 뒤쪽으로 더 안 들어가주는 승객들 때문에도) 뒷문은 꼭 열어야 겨우겨우 한두 사람이라도 더 태울 수 있는데, 뒷문 단속들 해대니 답답하죠. (oteel님 같은 경우도 생기고)
그렇게 꽉 찬 버스는 결국 배차간격의 실패라고 하면, 요금은 좀 관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경영진이겠죠? 기사들이야 뭐 어차피 오너는 아니니까.
웃기는 얘기지만, 저는 너무 만원버스를 타면 의도적으로도 무임승차합니다. 저로서는 환승 후 100원 밖에 안 내는 것이지만, 이런 서비스엔 100원도 지불하기 싫다는 마음! 하지만 그러다보니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도 기사들이 뒷문을 못 열어주는 것이니… 닭인지, 달걀인지…
5711 경쟁노선 하나만 있었으면… 아니면 마을버스로 서강대교 도하만 시켜줘도 괜찮을텐데. “아침출근길에 그 난리를 치고 기분 나쁘게 출근할 확률 35%, 100원 이상 지불 용의 있음” -> 시장성립!
March 30th, 2007 at 2:38 pm
롤롤
5711 번이 없어진다고 하던데요… ㅜㅜ 170 번으로 통합되면 없어지는거죠?
March 30th, 2007 at 5:27 pm
케이제이
이런 이거 확실한 소식입니까. 어디 물어볼데도 없고~ 170번은 어디로 다니는 버스죠?
March 31st, 2007 at 12:41 am
롤롤
오늘 신문에서 봤습니다. 5711 을 170 번으로 통합한다구요, 조선일보 14면에 나왔어요. 4 월 23 일부터 시행된다고 하던데요.
March 31st, 2007 at 1:28 am
케이제이
넵, 감사합니다. 말씀을 궁금해했다기보다는 어디 물어볼 데가 검색이 안되더라구요. 네이버에 5711 치면 여기만 나오구 해서요.–; 서강대교는 앞으로 어떻게 건너야할지 출근길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해지는 비 오는 밤입니다.
March 31st, 2007 at 7:14 pm
롤롤
혹시 조선일보를 보시나 해서 자세히 올려봤습니다..하하하..
5711 이 없어지면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걱정입니다.. ;;; 걍 놔두면 좋을텐데 서울시가 왜 이러는겐지..
황사가 심해진다고 합니다.. 마스크 꼭 챙기세요~
그럼..(_ _)
April 1st, 2007 at 12:39 am
케이제이
좋은 주말 보내시고 계시겠지요? 5711 너무 위험해보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 노선을 없앨건 아닌데 안타깝네요.
April 4th, 2007 at 3:01 pm
HelloEvery1
저도 170번으로 바뀐다는 말을 조선일보에서 언뜻본 것 같은데 어디서 알 곳이 없어서 검색하다 들어왔어요 ^ ^;.. 저도 5711타고 학교 다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공감가네요. 정말 그 배차간격OTL 오늘은 바로 앞에서 놓쳤더니 거의 20분 기다려야 한대오더라구요.. 오늘 보니까 5711이 파란 지선으로 바뀌었던데.; 어떻게된 건지 혹시 아시나요?
April 5th, 2007 at 10:05 am
케이제이
음, 5711을 함께 이용하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니 오히려 기사아저씨가 버스를 늘리겠다는 멘트를 달렸다는데요? 오늘은 그래도 무난히 출근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늦었음에도.. ㅋ
April 16th, 2007 at 9:59 am
케이제이
5711 버스 노선 변경되었습니다.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오늘도 다행히 월요일 세이프에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