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스파이더-맨이 뉴욕의 마천루를 누비는 활공이 제시되는 것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자신을 구하기 위해 ‘29분-피자타임’을 맞추려 애쓰는 장면이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구하다 늦어버리는 통에 8장의 피자를 물어주고 알바에서는 잘릴 형편이다.
Xmen을 보지 않았으며 헐크도 보지 않았다. 마벨 캐릭터들을 주연으로 하는 ‘슈퍼 히어로 무비’들이 별로 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작의 에피소드 하나를 크게 부풀려서 전형적인 로맨스 구조로 꾸민 뒤, 지루하고 어색한 CG나 늘어놓았겠지 싶었다. 근데 왜 보는 사람마다 재밌다고 난리인거야?
피터 파커 : 내가 누구냐고?
나는 주어진 일을 해야하는 스파이더-맨, 그리고 직장이 필요한 피터 파커다.
노무현 씨도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가끔 엄살인데, 이거 뭐 왼손도 모르게 선행만 해대는 피터 파커 군의 번뇌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상의 그는 우리로 치면 이태백 류인 것이다. - He’s just a kid?! - 거기에 그의 고백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에겐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 스파이더-맨, 파업합니다!
이제 뉴욕을 날아다니는 CG는 전혀 탄복할 일이 아니다. 단지 만화의 재현일 뿐, 새로운 상상력을 펼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러한 함정을 간파하고,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술들 - 5천4백만 달러밖에 안 하는? - 로 무장한 채, 드라마를 갖고 돌아왔다. 우리는 어려서 충분히 익숙한 ‘스파이더-맨’의 에피소드 한 편을 실사 영화로 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소시민 피터 파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여배우 커스틴 던스트, 저 아이 몇 번을 보아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애들 있잖아? 미운데도 계속 싫어하면서 보다가 결국 정들게 되는 애들. 영화가 피터 파커의 ‘드라마’가 중심인만큼 둘의 연애담이 약해선 곤란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겪는 피터에게 그녀는 충분히 큰 존재이다.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복직한 그와 그녀는 결국 둘만의 사랑법을 찾는다. 서로의 본질을 바꾸어선 곤란하다. 그래서 그녀는 ‘함께 맞서자. 난 계속 네 문 앞에 서 있을게’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그녀를 등지고 신나서 뉴욕을 누비는 거미인간의 경쾌한 활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래, 가끔 피자배달도 해야할 거다. 스파이더-맨도 그의 살림은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 파커: 난 우리에게 그런 영웅이 하나씩 있다고 믿는단다. 우릴 정직하게 해주고, 힘이 되게 하고, 우리를 당당하게 하는… 그리고, 최후에 자랑스럽게 죽을 수 있는. 가끔씩 우리가 강해져야 할 때, 그리고 원하던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 힘이 되어주는 영웅 말이다. 헨리에게 스파이더-맨은 그런 사람이야.
“1978년,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현대 장르가 탄생한 이래로 이 영화는 이 장르 최고의 걸작!” - 시카고 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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