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선라이즈’의 두 가지를 바꿔보자, 유럽의 비엔나를 아시아의 동경으로, 주인공 청춘남녀를 중년 영화 배우, 그리고 우울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여인으로 말이다. “사랑의 블랙홀”,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등을 통해 너무나 유명한 빌 머레이 - 내가 좋아하는 - 가 나온다고 하기에 어렵지 않게 구해서 챙겨 보았다. 아, 너무 지루했다. 영화보다가 잘 안 자는 편인 나인데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잠에 빠지는 통에 네 번 영화를 다시 틀었어야 했다.
참으로 미국적인 얼굴인 빌 머레이가 영화에서 일본, 나아가 아시아를 조롱하는 듯한 눈빛을 짓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가끔 났다. 이는 그 시선은 분명 조롱이 아닌 그 따뜻하고 정감있는 시선이며, 또 일본의 풍경에 대한 신선함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좋게 보아 넘기지 못하고, 여전히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나 혼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 탓일까? 글쎄..
일본이라는 풍경이 가져올 수 있는 신선함도 ‘애-이-시-안’인 내게는 없고, 주연여우의 분위기나 미모도 보통 - 반대라면 용서가 됐을까? - , 우울한 중년남과 소외된 30대 여인의 모습은 눈 앞에 늘 널려있는 걸. 아, 고독함이 중요한거라구? 고독함과 심심함은 정말 얼마나 많이 다르긴 한 걸까, 그러니 내게 이 영화는 세 번이나 잠에 빠지게 하는 것이지 말야. 그리고 둘이 섹스하지 않는 것은 영화를 고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는지 몰라도, 꽤나 부자연스러울 지경이었다.(이건 내 사상의 문제야?)
문제는 영화에 있지 않았다.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 ‘비포선라이즈’가 생각났던 것이 문제였다. 어렸을 때 그렇게나 마냥 좋아하고 아끼던 ‘비포선라이즈’를 이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이는 내가 이제 쬐금 컸다고 그 영화가 애들이나 좋아할 수준이라고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거나, 아니면 그 당시 내 촌스러움과 미숙함을 확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 영화를 보며, ‘사랑’을 꿈꾸던 내 모습을 돌아보다 이제 십 년 남짓의 세월을 겪어내며 변해버린 내 모습이 역겨워져서 몰래 구토라도 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영화 프란시스 코폴라가 제작하고, 그의 딸인 신예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을 했다는데, 뭐 다른건 잘 모르겠고, 두 사람이 동경 - 7일간 따뜻한 진심의 communicate를 했다는, 영화 포스터에서 그들이 7일동안 한 일이 그것임을 알 수 있었다(笑) - 에서 헤어지는 시퀀스와 그 표정들이 참 맘에 들었던 것은 인정하겠다. 특히 대사의 음향을 꺼버리고, 귀엣말을 주고 받는 모습만 제시한 후에 따뜻한 키스와 함께 돌아서는 남녀라니… 그래, 어쩌면 그 귀엣말을 통해서 빌 머레이들은, 그리고 제시들은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샬럿; 여기 다시 오지는 말아요, 여기서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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