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주(燒酎)’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제 술을 입에 댄지도 10년 가까이니 술에 대해 글 한 편 쓸 자격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평균적인 대학생보다 아마도 두 배는 더 자주, 더 많이 소주를 마신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흔히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나는 술자리의 분위기도 좋아하고, 술 자체도 좋아한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술자리의 분위기만 좋아했던 성도 싶은데, 지금은 둘 다 좋아졌으니 이것도 연륜이 쌓이는 것일까. 그럼 내가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나와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소주’란 녀석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가보도록 하자.

우선 소주는 값이 싸다. 그래서 그 대중성, 폭넓은 인기를 구가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구입하면 1100원이면 한 병을 살 수 있고, 음식점, 주점에서도 3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 맥주 한 잔에 들어있는 알콜과 소주 한 잔에 들어있는 알콜의 양이 같다고 할 때, 이는 요즘 상품을 구매하는 기준이 되고있는 ‘가격 대 성능비’에서 최적의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내가 흠모하는 모 스승님의 말씀 중에 “술은 취하려고 먹는 것이지, 왜 밥먹고 술먹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은 최근 나의 주도(酒道)에 새로운 지침이 되고 있다. 술을 먹는데 점잔만 빼고, 심중의 얘기는 화통하게 꺼내놓지 못하고, 그저 취하지 않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술자리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다만 견디기의 시간일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초년 시절까지를 술을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보냈을만큼, 술자리에서 안 취하려 애쓰며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부자연스러운 억지 몸짓이었다 하겠다. 그러기에 소주는 술의 본연적인 기능 - 사람을 취하게 하기 - 을 효율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하겠다.

소주는 마시는 사람을 돌연, 다소 급작스럽게 취하게 하는 술이다. 이는 맥주가 한참을 먹어야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게 살짝 취하고, 양주가 은은하게 취기 오르게 하는 것과 대비되는 성격이라 하겠다. 가끔 소주를 먹으며 밤을 지새보기도 하지만, 이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주는 잔의 횟수를 잦게 해서 술자리를 진행하면, 술의 성격상 4시간 정도 먹으면 취기가 폭발하기 때문에 그리 쉽게 오래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폭발성 역시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격무와 일상에 바쁜 현대인에겐 술 마실 시간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도 히트 앤드 런(Hit & Run) 작전을 구사해 최소의 시간을 투입하여 최대의 효과를 얻어야 할 것이다. 맥주 마시며 지루해하거나 양주 마시는 느긋함은 젊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소주란 녀석에 대해 대강 성격을 짚어보았으니 이제 벗으로 가깝게 지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소주를 먹기에 최적의 안주는 역시 고기라 하겠다. 그간 살아오며 ‘회’를 많이 먹어보지 못해 그 안타까움과 동경으로 한때는 회를 최고의 안주일 것이라 생각하고 지내기도 했으나, 회와 소주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근래에야 결론짓게 되었다. 물론 소주를 음용할 때, 곤란한 문제 중 하나인 입에 넣고 나서의 쓴 맛을 와사비 적당히 찍은 회 한 점이 씻은 듯 없애주기는 하나 몸, 즉 위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회는 위에서 너무 쉽게 바스러지기 때문에 좋은 안주가 될 수 없다. 이에 비해, 기름기 있는 고기는 위벽도 보호하고, 쉽게 위에서 없어지지도 않으므로 최적의 안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선호하고 추천하는 안주로는 맵디 매운 ‘낙지볶음’을 들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맵기도 바쁜데 어떻게 소주까지 먹느냐고 내게 반문하곤 한다. 그러나 ‘맵기도 바쁨’에 역시 힌트가 있다 하겠다. 소주의 쓴 맛을 낙지의 매운 맛이 순식간에 없애주기 때문이다.

소주는 비우는 맛으로 마셔야 한다. 잔을 비우면 권주를 하고, 잔을 채우는 절차가 뒤따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도가 발현되고,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두터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주가 결코 커피처럼 나눠서 호호 불어가며 마실만한 좋고 귀한 술은 아닐 것이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손길, 몸짓이 술자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때, 그 횟수를 줄게 하는 나눠마시기는 좋지 않다. 나는 내가 윗사람을 모시는 술자리가 아니라면, 내 지론인 ‘소주잔 7부로 따르기’를 전파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어르신들이나 혹자는 가득 따라야 정(情)이라고 말씀들 하시지만, 가득 찬 소주잔을 한 번에 마시기 위해서는 목청을 열고 마셔야 한다. 옛 표현에 “소주잔을 빤다”는 말이 있었듯이 소주는 털어넘기는 것이 아닌, 빨아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청을 열고 마시면 소주의 쓴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몸에 자기도 모르게 쌓여 체감케 되는 알콜이 먼저이기 십상이다. 소주 넘기는 순간까지 즐겨야 가히 애주가(愛酒家)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년간, 여러 차례의 임상실험 결과, 한 번에 빨아마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소주잔의 수위는 6.5부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호흡법에 대한 논란까지 일어나기도 하나, 아직 체계화되지 않은 단계이다.

소주 마시는 법도를 논했으니, 얼마나 마실까의 문제, 주량(酒量)에 대한 고민을 해보도록 하자. 주량에 대한 얘기는 이래저래 참 많이 나오며, 사람 평가의 기준에까지 오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만나본, 술 참 잘 먹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주량을 이야기 할 때, 그들은 가끔 7병이나 먹어제끼면서도 소주 2병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주량이 4-5병이라며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최고기록을 자신의 주량인줄 아는 큰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주량은 그 양을 먹어도 자기 할 일, 앞가림을 이상 없이 할 수 있는 양이어야 한다. 술을 많이 먹고 탈을 일으키고선 그 다음날, 어제 먹은 술병을 가늠해보고 그것을 자기 주량이라 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주선(酒仙)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주량을 제대로 파악해서 항상 절제하고 삼가하는 마음으로 술자리에 임해야할 것이다. 자기 주량도 잘 모르고, 그 개념조차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선수 자격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대개 2병을 잘 마실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 이상은 그 날의 자신 컨디션과 안주 여하에 따라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주량 과시는 별로 의미가 없다 하겠다.

난 소주를 참 좋아한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갈진 모르지만 지금 내 자신에게 굳게 약속을 한 가지 한다면, 언제라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은 기꺼이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조금은 이른 저녁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을 보며, 맘에 맞는 지인들과 함께 기울이는 소주 한 잔이라면 그날의 피로는 날아가버릴 것이고, 내일의 근심도 잠시 제쳐두고, 어우러져 기꺼울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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